1. 다윗왕 (이스라엘 2대왕) 이 등장까지의 역사적 배경
다윗왕, 그는 보통 다른 왕처럼 왕자로써 왕에게 쉽게 왕위를 물려 받지 못한 자였다. 오히려 왕의 시기 질투 속에 죽임을 당할뻔한 존재였다. 그런 다윗이 왕이 된 역사적 배경을 통해 다윗왕을 좀 더 깊이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스라엘 2대 다윗왕이 이스라엘의 1대 사울왕으로부터 시기를 받고 쫓김받는 신세로 전락하여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한 사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사실 다윗은 자신의 적이었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럿 있었으나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이유로 그를 죽이지 않았다. 쫓겨다닐 지언정 그를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윗 역시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위를 받기 전까지는 약속과 사명을 받았을 뿐 왕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러주셨다는 소명 의식, 그것이 다윗이 고난과 희생을 이기고 왕이 되는데에 대해 많은 힘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에 몸을 의탁한 다윗
다윗은 사울의 미움을 받아서 계속적으로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대로 동굴만 전전하면 사울의 손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대로 방황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기댈 곳이 없어 자신이 싸웠던 적 블레셋 족의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고 아기스는 그를 받아 주었다.(삼상 27:5)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인 다윗을 블레셋의 왕이 왜 받아주었을까? 당시 가드는 블레셋의 도시중의 하나인데,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과의 치열한 전투중에 있었다. 그렇다면 다윗 역시 그들의 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아기스가 그를 받아준 것은 사울의 적인 다윗을 받아, 다윗과 적대 관계인 사울을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을 자신의 부하로 받아 주었다.
그 당시는 블레셋과 이스라엘과의 치열한 전투 중에 있었으므로 아기스에게 도움을 청한 다윗으로서도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다윗은 싸우겠다고 나섰으나, 블레셋 방백들이 반대를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저가 이스라엘인인데 과연 전쟁에 나가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겠는가? 오히려 블레셋을 공격할 것이다. 절대 다윗을 전쟁에 보내선 안된다” 하였다. 이런 의견을 통해서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된 다윗은 동족을 향해 칼을 쓰지 않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다윗은 “가드왕 밑에 있는 동안 한 고을을 허락해 주시면 그곳에서 유하면서 왕의 명령을 받들겠다. ” 하여 그의 부하들과 식솔들을 데리고 시글락이라는 한 고을에 유하게 되었다. 유하는 동안 다윗은 아말렉 등 유다민족을 괴롭히던 민족들을 토벌하였다.(삼상 27:6)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왕의 전사 통지
아말렉 토벌후 시글락으로 돌아올 때 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연전 연패하였고(삼상 31:1) , 길보아산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이 전사했다는 한 아말렉 청년의 비보를 접하게 된다.(삼하 1:4) 그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사울왕을 죽이고 그가 차고 다니던 장신구와 왕관을 증거로 내세웠는데, 사실 사울왕과 그 아들들은 전쟁중에 자결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울왕과 다윗왕이 적대관계에 있었으므로 자기가 그 왕을 죽였다고 하면 그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사울왕을 죽였다고 보고를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왕은 그 소식을 접하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심히 슬퍼하였고 여느 왕국의 왕들처럼 그를 치하하지 않았다.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을 사람이 헐고 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결코 죽일 수 없고, 그가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하는 것인데, 사울왕을 죽였다고 자처하는 아말렉 청년을 그냥 둘 리 만무했다. 결국 하나님을 중심삼은 단호한 마음으로 그를 처형한다.(삼하 1:15)
2. 다윗왕국
다윗의 남쪽 유다 왕위 등극
사울왕의 사후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받은 사명을 행하고자 그의 부하와 식솔들을 데리고 헤브론 각 성으로 옮겨간다. 이스라엘은 계속된 블레셋과의 전투로 황폐하고, 왕이나 지도자도 없고,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다윗을 기억하고 있던 유대 장로들은 헤브론에 모여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유다의 왕으로 추대한다.(삼하 5:1~3) 다윗왕이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나, 다윗왕이 전 이스라엘을 바로 통치한 것은 아니었다. 헤브론 1개 지파인 유다 지파만 다스릴 수 있었고, 나머지 11개 지파는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후계자로 인정했다. 이렇게 다윗은 7년 6개월을 헤브론에서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펼쳤던 것이다.
다윗왕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고나서 어떻게 해야 이렇게 황폐하고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왕으로써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오직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며 왕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시며, 다윗왕은 그저 육신적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며, 하나님께는 종이며, 심부름꾼이기에 백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 중심의 신권정치가 바로 다윗왕이 후일 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그랬기에 다윗왕의 행함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선행되었던 것이다.
다윗왕과 사울왕에 대한 간략한 비교
이 쯤에서 다윗왕과 사울왕을 간략히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사무엘을 통해 전 이스라엘에 왕이 사울임을 공표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사울왕은 카리스마적인 정치를 하였고 강인하였다. 그러나 다윗왕은 달랐다. 기름부음은 받았지만, 만민 앞에서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험난한 삶을 이겨내야 했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감으로 하나하나를 개척해 나감으로서 인정된 왕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왕으로서의 정신이며 하나님께 대한 그 중심이다. 사울왕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여느 왕국과 같이 자신의 절대왕국을 세우고자 하였던 것인데, 불순종과 욕심으로 실패하게 된 것이다. 그 욕심이 드러난 것이 다윗에 대한 처절한 증오였던 것이고, 자신의 왕위를 이을 예정이었던 요나단에게도 그런 류의 말을 했었다. 다윗이 유다왕이 된 것은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분열을 감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쪽의 이스라엘 11개 지파는 사울의 자손을 왕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지파간의 정통성이 없다는 불리한 점을 알고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다윗이 어렵고 불리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기로 결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쉽게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될 수도 있었고, 그로 인해 편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
이는 다윗이 눈앞의 어려움보다는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오직 그 중심은 하나님이었고, 오직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데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며,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백성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왕임을 모든 백성이 알게 하는것이 그가 갖고 있던 사명이었다. 훗날 메시아를 예언적 다윗으로 비유한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울왕의 사후 북쪽의 이스라엘
다윗왕이 남쪽 유다의 왕으로 등극할 즈음, 북쪽의 이스라엘(11개지파)에도 왕이 세워지게 된다. 사울왕에게는 아브넬이라는 군장이 있었고, 생존한 이스보셋(아들 중 넷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조카이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왕이 사울이었으니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며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 물론 그 당시 이스라엘의 11개 지파의 정식 왕으로 등극한 것은 아니었고, 40세 되던 해 즉 다윗이 왕이 된 지 5년 6개월이 되던해에 정식 왕으로 즉위하고 2년을 재위했다. 그러니까 5년 6개월간은 11개 지파를 설득하는 공작기간이라고 볼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정식 왕이 된 2년간은 다윗왕국이었던 남유다와 팽팽한 긴장관계가 지속되었다. 다윗왕은 사울왕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한 길르앗 야베스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축복한 일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다윗이 유다왕이 된 것을 안 아브넬이 미리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도록 손을 써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스보셋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배경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스보셋은 아브넬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아브넬은 사울왕의 군장이었는데, 지위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보셋은 졸장부여서 북이스라엘의 허울뿐인 왕이었지, 아브넬이 실세였다. 그리고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견제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는 북이스라엘의 이스보셋과 남유다의 다윗이 분열하는 것이 자신의 나라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다윗은 블레셋을 능가하는 강국을 이루게 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충돌
북이스라엘의 정식 왕이 된 이스보셋은 다윗왕 에게 싸움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북이스라엘의 아브넬과 남유다의 요압이 기브온에서 대치하는데, 양측의 수효를 각각 맞춰 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고, 신호가 떨어지자 북군은 살육을 당하고 패배하고 만다.
사울왕가의 몰락과 이스라엘의 2대왕 다윗
아브넬은 당시 다윗왕 이 전 이스라엘을 통일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였는데, 이 아브넬이 이스보셋왕을 배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스보셋왕의 군장인 아브넬이 왕의 첩 리스바와 통간하여 왕의 질책을 받았다. 결국 왕과 싸우고 배반하고 다윗에게 귀순한다. 다윗에게 붙은 이유는, 그동안 11개 지파를 자기가 경영하면서 그 마음을 많이 사 놓았는데, 이스보셋왕과 싸웠으니 그 11개 지파를 다 다윗에게 넘어오게 하고 자신은 미래를 보장받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아브넬을 다윗은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요압의 동생을 죽인 아브넬은 요압의 손에 죽게 된다. 그 후 허울 뿐인 이스보셋 역시 자신의 두 군장에 의해 살해 당하고,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증표로 이스보셋의 수급을 다윗에게 가져갔지만(삼하 4:8), 다윗은 그들을 처형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통일된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33년을 통치한다.
다른 글 보기 :
- 다윗 이름의 뜻
- 다윗 소개
- 안상홍님 – 다윗 왕위의 예언을 성취한 재림 그리스도
- 아비가일과 다윗 –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다윗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 기독교의 역사와 다윗
- 다윗성 시온과 하나님의 처소 시온
- 다윗과 골리앗: 믿음으로 거구의 장군을 무찌른 소년
- 다윗의 인품
- 미갈 – 다윗과 사울왕의 딸
참고 :
- 한국 컴퓨터 선교회 – 사울
- 다윗왕국1, 다윗왕국2 -신학박사 김홍전 지음
- 성왕 다윗 – 가톨릭출판사 정진석 추기경 지음
- 다국어 성경 Holy B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