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과 다윗 –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다윗

다윗과 아비가일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나다>, 벨기에의 화가 프란스 프랑컨 2세( Frans Francken II) 作.

아비가일의 등장 배경

아비가일(Abigail)은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후, 그를 견제하는 사울을 피해 600명가량의 부하들을 이끌고 유랑 생활을 했을 때의 일화 속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사무엘의 장례를 마친 뒤 다윗은 아비가일이 사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란 광야에 도피하여 머물고 있었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며 그는 갈멜 족속이었더라” (사무엘상 25:1~3)

마온은 헤브론에서 남쪽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그곳에는 성정이 정반대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성경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내 아비가일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남편 나발은 거칠고 악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소개한다. ‘나발(Nabal)’은 ‘어리석은, 분별없는’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는 나발의 어리석은 행위로 인해 그를 치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윗을 선대하지 않은 결과였다.

다윗과 나발

다윗의 원조 요청

나발은 매우 큰 부자였다. 어느 정도 부자인지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동방에서 최고 부자였던 욥이 양 7000마리, 약대 3000마리, 소 1000마리, 암나귀 500마리를 소유했던 점을 감안하면 양 3000마리, 염소 1000마리를 가지고 있던 나발 또한 상당히 부유한 편에 속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욥기 1:1~3).

나발에게는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목장이 있는 갈멜 근처에 한동안 다윗의 군대가 주둔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은 큰 자산 가치가 있었기에 부유한 목축업자들은 이웃 부족이나 도적들의 습격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는 그곳에 주둔해 있는 동안 가축을 빼앗거나 나발의 목자들을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밤낮으로 그들의 보호막이 돼주었다.

다윗은 당시 약 600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이끌고 도피중에 있었기에 식량난에 허덕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나발에게 식량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냈다. 당시 양털을 깎는 날은 농사로 치면 추수하는 날과 같아서 큰 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기회에 군사들의 식량을 지원받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광야에서 듣고, 자기 부하들 가운데서 젊은이 열 사람에게 임무를 주어서 그에게 보냈다.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을 찾아가서, 나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하여라. 너희는 그에게 이렇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만수무강을 빕니다. 어른도 평안하시고, 집안이 모두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어른의 모든 소유도 번창하기를 빕니다. 지금 일꾼들을 데리고 양털을 깎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른의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괴롭힌 일도 없으며,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양 한 마리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습니다. 일꾼들에게 물어보시면, 그들이 사실대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잔치를 벌이는 좋은 날에 어른을 찾아왔으니, 제가 보낸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보시고, 부디 어른의 종들이나 다름이 없는 저의 부하들과, 아들이나 다름이 없는 이 다윗을 생각하셔서, 먹거리를 좀 들려 보내주십시오.’” 다윗의 젊은이들이 도착하여, 다윗의 이름으로 나발에게 이 모든 말을 그대로 전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사무엘하 25:4~9, 새번역)

다윗의 요청을 묵살한 나발

그런데 나발은 다윗과 그의 군대를 향해 무례한 말을 덧붙임으로써 다윗의 화를 부추긴다.

“드디어 나발이 다윗의 젊은이들에게 대답하였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빵이나 물이나, 양털 깎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사무엘상 25:10~11, 새번역)

다윗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터였고, 사울의 견제를 받을 정도로 차기 왕권의 가능성이 높았다. 지위와 군사력이 있었지만 다윗은 나발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도움을 주었으며 좋은 날에 겸손하고 정중하게 나발에게 지원을 구했다. 그러나 다윗의 선대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나발은 다윗과 그의 군대를 배은망덕한 집단으로 전락시키며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다윗 군대의 수고와 선대를 받고도 감사 인사는커녕 부하와 자신을 조롱한 나발에게 매우 분노한 다윗은 나발의 집안의 남자들을 처치하기로 작정하고 군사 400명을 이끌고 나섰다.

아비가일과 다윗

아비가일의 기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나발의 일꾼들은 서둘러 안주인 아비가일을 찾아가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렸다. 아비가일은 어리석은 남편의 과오로 집안이 크나큰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고 홀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사무엘상 25:18~19)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전달할 식량과 선물을 준비하여 먼저 일꾼들을 보낸 후, 자신도 서둘러 뒤따라 나섰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태를 몰고 온 남편 나발에게는 함구한 채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아비가일은 드디어 다윗과 마주쳤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마자 얼굴을 땅에 대고 몸을 굽혀 극진한 예를 갖춰 간청했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 그런 다음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애원하였다. “죄는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이 종이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이 종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이름 그대로, 못된 사람입니다. 이름도 나발인 데다, 하는 일도 어리석습니다. 그런 데다가 장군께서 보내신 젊은이들이 왔을 때에는,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아서,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5:23~25, 새번역)

다윗과 아비가일

<다윗과 아비가일>,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作.

아비가일은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남편은 신경 쓰지 말라며 다윗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어진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을 불량한 자로 취급하던 나발과는 정반대의 견해였다.

“장군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님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 이제 곧 주님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처럼 좋은 일을 장군께 베풀어 주시는 날, 이 종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25:26~31, 새번역)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이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로서 나발과 같은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불미스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라고 간청한다. 오히려 그들처럼 미련한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치실 것이므로 직접 나설 필요가 없다고 권면한다. 결국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말과 처신으로 다윗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다.

아비가일의 말에 감동한 다윗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늘 그대를 보내어 이렇게 만나게 하여 주셨으니, 주님께 찬양을 드리오.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그대가 나를 지켜 주었으니, 슬기롭게 권면하여 준 그대에게도 감사하오. 하나님이 그대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 그대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대가 급히 와서 이렇게 나를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의 집안에는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남자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할 뻔하였소.” 그리고 다윗은 그 여인이 자기에게 가져온 것들을 받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그대의 말대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사무엘상 25:32~35, 새번역)

아비가일의 말이 다윗을 감동시킨 이유는 그녀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서의 다윗의 입장과 명예를 헤아리는 한편,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꿰뚫어보는 지혜와 분별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비가일은 단순히 자신의 집안을 살리려는 의도로 다윗을 설득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비가일의 말에 감동을 받은 다윗은 그 마음을 돌이키고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며 그녀에게 복을 빌어준다. 이로써 아비가일은 자칫 집안이 멸족될 수 있는 크나큰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아비가일과 다윗

<현명한 아비가일>, 스페인의 화가 후안 안토니오 데 프리아스이 에스칼란테(Juan Antonio de Frias y Escalante) 作.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

한숨 돌린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갔을 때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이며 술에 취해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태로운 순간에, 나발은 홀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환락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침착하게 나발이 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나발이 정신을 차리자 아비가일은 집안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했었는지, 그간 있었던 일을 나발에게 말해주었다. 나발은 아비가일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일을 벌였는지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성경은 그가 크게 낙담한 나머지 돌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과 같이 하나님이 나발을 징계하므로 나발이 죽고 말았다.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사무엘상 25:37~38)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악인을 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한편,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비가일에게 청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리하여 아비가일은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에 이어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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