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간성

알다시피 이스라엘에는 본래 왕이 없었다. 그러면 왕이 없었던 이스라엘에 어떻게 왕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다른 국가들과 달리 특이하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직접 선택 받은 인물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1대 왕이었던 사울도, 2대 왕이었던 다윗도 모두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 중 다윗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가로 인정받는 축복을 누렸다. 그뿐인가? 다윗의 계보를 따라 그리스도인 예수가 탄생하였으며 심지어 다윗 그 자신은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인물로까지 성경에 기록되었다. 이러한 다윗의 특별함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성경의 표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간성 – 인간적인 성품 – 은 과연 어떠했을까?

 

다윗의 용맹과 지혜

다윗의 인간성, 용맹성. Antonio Zanchi David and Goliath, 1631
다윗과 골리앗 – Antonio Zanchi, 1631

‘다윗’ 하면 연상되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골리앗과의 싸움이다. 다윗은 일찍이 맹수들로부터 양을 지키는 양치기였고, 그 유명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매로 상대했던 전적이 있을 정도로 용맹한 자였다.(이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다윗의 용맹함에 관한 글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아직 어린 다윗이 당대의 용장이었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사울은 다윗을 점차 견제하게 된다. 사울 왕은 묘수를 내어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개를 갖고 오면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사실 왕은 이미 골리앗을 무찌르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므로 또 다시 조건을 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적의 손에 죽기를 바랬던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다윗은 수하들을 이끌고 가서 만기가 채 되기도 전에 블레셋 사람의 양피 200개를 가지고 와 왕에게 바친다. 결국 사울 왕은 자신의 딸인 미갈을 다윗에게 시집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다윗은 남다른 용맹함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 다윗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지략으로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여 수도로 삼았다. 이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었는지 대략 설명하자면, 예루살렘은 도시 전체가 가파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와 같은 성으로 방어하기에는 매우 유리한 반면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도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 성경의 기록을 참고하자면 여호수아서에도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 성에 살던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 즉 예루살렘 정복에 실패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저 강성했던 대국,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조차도 오랜 포위전 끝에 겨우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고 하니(왕하 25:1 ~ 10) 예루살렘 정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다윗 역시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하고자 했다면 매우 고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 수구(물의 통로)를 통해 급습하는 대범하고도 지혜로운 전략으로 단기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다윗의 이러한 지략가적 면모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다윗은 자신의 모사 중 한 명이었던 아히도벨마저 변심하여 반역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다윗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아히도벨이 어떤 자인지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자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삼하 16:23)

당시 이스라엘에서 아히도벨의 계략은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받은 응답과도 같이 여겨졌다고 하니 그의 지혜와 혜안이 어느 정도였을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뛰어난 책략가 아히도벨의 변심은 다윗에게 있어서 매우 위협적인 요소였다. 동시에 우리는 아히도벨마저 압살롬의 편에 섰던 이 내용을 통해 압살롬이 일으킨 반역의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높았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자.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삼하 15:32 ~ 34)

다윗은 자신의 또 다른 모사이자 오랜 친구인 후새에게 압살롬의 측근으로 들어가 아히도벨의 모략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뿐인가? 예루살렘 성 안에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두어 후새에게 그가 듣는 소식을 무엇이든지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라고 한다.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삼하 15:35 ~ 36)

이렇게 하여 급박한 순간에도 다윗은 후새 – 대제사장 – 그들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정보의 통로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다행히 압살롬의 진영에 무사히 정착한 후새는 지금 당장 군사를 일으켜 다윗을 죽이러 가자는 아히도벨의 의견에 맞서 그럴듯한 주장을 편다. 후새는 주장하기를 다윗은 전쟁에 능한 자니 분명히 어딘가에 잘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를 치러가도 죽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간을 두고 대대적으로 많은 군사를 모아 왕이 직접 다윗을 치러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다윗은 압살롬의 급작스러운 반역으로 도망하느라 무척 지치고 제대로 무장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아히도벨의 의견이야말로 백 번 옳은 것이었지만 압살롬은 어찌 된 셈인지 후새의 의견에 마음이 더 쏠린 듯하다.(그의 눈을 가린 건 아마도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압살롬 진영의 소식은 다윗이 열어놓은 정보의 통로를 통해 곧장 다윗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첩자였던 후새의 의견을 들은 것은 압살롬이 패망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다윗은 상황을 슬기롭게 살필 줄 아는 재기와 지혜 또한 가지고 있었다.

 

다윗의 겸손과 통솔력

천대받던 양치기에서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기까지 다윗의 지위는 참으로 극적으로 변화했다. 어떤 때는 동굴로 광야로 유리하며 도망자로 전전할 때도 있었으나, 어떤 때는 만인이 우러러 보는 왕으로 군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늘 겸손했으며 주어진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성경에는 그가 맡은 바 지혜롭게 행하므로 명성이 높아졌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삼상 18:5)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삼상 18:13 ~ 16)

어린 나이에 사울 왕의 눈에 띄어 수금 연주를 하며 왕궁에 머무르기도 하고, 왕자인 요나단과 돈독한 우정도 쌓고, 저 유명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무찌르기까지 한 다윗이 당시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화제가 되고 명성이 높아졌겠는가?(심지어 그는 용모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늘 겸손했으며 자신의 행한 일을 들어 의기양양하거나 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울 왕이 다윗을 사위 삼으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삼상 18:18)

그러나 사울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딸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내 버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생이었던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게 된다. 이에 사울은 다시 신하들을 시켜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의중을 떠 보게 된다. 이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의 귀에 고하매 다윗이 가로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 한지라” (삼상 18:22)

자신을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고 일컬은 다윗의 표현을 통해 당시 다윗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대를 뛰어넘어서 실제로 다윗을 대면 한번 해보지 못한 우리도 아는 이 사실을 사울 왕 혼자만 몰랐으니, 왕자인 요나단마저 다윗의 인품에 감탄하고 함께하고자 할 때에 사울 왕은 다윗을 의심하고 견제하기 급급했다. 그는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국정도 뒷전으로 여기고, 오직 다윗을 처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하면서 광야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둘람 굴까지 도망쳐 오게 되는데 이 소식을 듣고 오히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사연을 가진 불만 세력들로써 사회적으로는 내세울 것 없는 천대받고 소외된 무리들이었다. 무리의 수는 점차 많아져 무려 400명 가량이나 되었는데 다윗은 그 자신도 도망자의 상황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나아왔던 그들을 필요 없다 내몰지 않고 모두 품어 안았다. 4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무리 없이 이끌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간 다윗의 리더십과 통솔력은 실로 본받을 만 하다. 다윗의 이러한 포용력은 시글락 전투 중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먼저 가서 시글락을 불사르고 그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잡아 간 일이 있었다. 사로잡힌 무리에는 다윗 자신의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 일에 대해 기록하기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삼상 30:3 ~ 4)

다윗과 함께한 병사들이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소리 높여 울었다 했으니 그들의 절망과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윗은 먼저 아말렉을 쫓아가도 될지 하나님께 묻고 난 후에, 부하들을 이끌고 아말렉인들을 공격하여 빼앗긴 사람들과 물건 등을 모두 되찾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어 아말렉을 공격하는데 가담하지 못하고 뒤쳐진 200명의 무리가 있었다. 나머지 400여 명의 군사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서 나태해진 아말렉 인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이 사로잡았던 가족들과 많은 물건들, 거기 더하여 소떼와 양떼까지 전리품으로 얻게 된다. 그런데 전리품들을 보자 욕심이 생긴 부하들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전리품들을 나누어줄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아내와 자식들만 돌려주도록 하자’고 권한다. 그러나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찌니 같이 분배할것이니라 하고 …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탈취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가로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삼상 30:23 ~ 30)

이처럼 함께하다 지쳐 싸우지 못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그들 또한 동등한 무리의 구성원으로써 공평하게 대우했던 다윗의 모습은 부하들에게 있어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이처럼 다윗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와 리더십,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뒤처진 약자라 할지라도 감싸줄 줄 아는 따뜻한 포용력까지 갖춘 성군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다양한 계층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끝내 중립적이던 유다 민족까지 그를 왕으로 받아들여 이스라엘 최초의 통일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다윗의 인간성

지금까지 우리는 다윗의 용맹성에 관해 그리고 그의 지혜에 관해, 그리고 그의 카리스마, 포용력, 겸손함 등등의 다윗의 인간성의 면면을 대략 살펴보았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우리는 사실 다윗의 인간성에 관해 반의 반도 살펴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반의반의 반도 못 봤다고 해야 할까? 사실 우리는 다윗의 인간성에 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직 살펴보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 다윗이 왕이 되기 이전의 시기를 통해서 다윗의 성품, 그 핵심적인 부분을 짚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일찍이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그러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축복과 영광은 커녕, 그는 무려 10년간이나 기약 없는 도망자 신세로 전전긍긍 해야 했다. 광야로 산중으로 동굴로 어떤 때는 적국으로 도망 다니며 목숨을 위협받았을 뿐 아니라, 다윗을 도와주면 도와준 이들까지 화를 입었다. 그러므로 심지어 다윗이 구해준 그일라 사람들마저 그를 배신하고 사울 왕에게 그의 위치를 밀고하여 사울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것은 다윗의 이러한 어려움은 모두 사울 왕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다윗은 그럴 생각이 없었으나 사울 왕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고 빼앗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는 오직 다윗을 죽이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다윗을 살려주려 한 요나단 왕자에게 단창을 던졌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좌절하지 않았고 낙담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다윗이 이 모든 고난의 원흉인 사울 왕을 죽이려 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왔음에도 두 번이나 죽이지 않았고, 나중에 사울 왕이 죽게 되었을 때, 사울을 죽인 자를 도리어 벌하였다. 왜였을까? 두 번째로 사울 왕을 살려주면서 다윗이 했던 말을 살펴보자

“…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 26:8~9)

다윗에게 있어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자이자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에 대해(그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건 간에) 끝까지 신의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울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다윗의 태도야말로 다윗의 모든 판단기준이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인간성에 대해서 우리가 연구할 때에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으니, 사람들이 인간성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성 즉 성품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양식이 모두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가? 다윗의 일평생에 있어서 그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일까? 그의 개인적인 성품인가?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다윗이 그의 생애의 고비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바람, 소망, 욕심보다도 우선했던 것이 하나 있다. 다윗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자 가장 두려워했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다윗을 지켜보는 절대자의 눈이었다. 다윗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윗의 행적을 통해서 그의 인간성에 대해 자세히 알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다윗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대단히 의식하여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인간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용맹함, 겸손, 성실함, 지혜로움, 리더십 기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과 사랑이 그 중심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하고, 다윗을 그리스도를 표상한 인물이요, 또한 다시 오실 재림 그리스도를 표상한 인물로 삼으신 것이다.

참고:

  1. 위키백과
  2. 워치타워온라인 – 여호와의 증인
  3.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4. 문제적 인간, 다윗 : 영웅과 죄인이 교차하는 한 인간의 초상 – 데이브드 울프 저 / 김수미 역
  5. 리더피아 2013년 6월호(월간지) : 리더피아 편집부
  6. 성경과 고대정치 2 – 조병호 저
  7. 한국 컴퓨터 선교회
  8.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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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oughts on “다윗의 인간성

  1. 다윗이 용맹하며, 뛰어난 지략가이자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 없이 성경에 잘 나와있죠. 당시 사울이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다윗을 미워했다면 제가 다윗이었어도 사울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을텐데 다윗은 그보다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말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칭찬할 만하다 할 것입니다.

  2. 다윗의 품성은 놀랍다. 현세대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간다면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보이거나 남에게 똑같이 혹은 더한 피해를 주는 것을 서슴치 않기도 하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이럴 때 다윗의 성품에 대한 이 글은 분명 이 세상에 전하는 큰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매번 죽이려 했던 사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이유로 끝까지 살리고 오히려 그를 죽였다고 자랑하는 부하를 죽일 수 있는 그 마음은 다윗이라는 한 개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 어찌해야하는가까지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의 사람이라 외치면서도 수없이 뒤로 나쁜 일을 서슴치 않는 모습도 당연 이 다윗을 통해 회개를 하는 기회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또한 이 글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되어 너무 기쁘다!

    1. ㅎㅎ crystal님 너무 감정이 격하신 것 같습니다.
      다윗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감정이 실릴만한 인물인 것 같기는 합니다. 송중기가 지금 떠서 여러 나라에 그 위세를 떨치듯, 그 시대 다윗의 모습도 이에 못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윗이야말로 정말 세기적 엄친아 아닐까요… 왕이 되고, 여러 나라에서 조공을 바치고, 멋진 외모에, 인간성까지 최고인 인재. 대단합니다.

      1. ㅋㅋㅋㅋ 한껏 글에 흠뻑 취해서 감정이 격해졌었나 봅니다ㅋㅋㅋ
        그래도 저는 이런 다윗의 모습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KingDavid님 의견처럼 이런 다방면의 멋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참 배울점이 많은 인물같습니다~~

  3. 인간성이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데 요즘 사회를 비춰보면 아마도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기란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시대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수가 있을까요? 다윗은 마음이 바다같이 넓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ㅎ 어린아이때부터의 용맹함은 커서 왕이 될수 있었던 하나의 달란트가 아니였을까 싶네요. 부럽네요 그 용맹함과 바다같이 넓은 마음…ㅎㅎ

  4. 다윗하면 골리앗과 싸워 이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다윗이 생각보다 똑똑한 인물이었군요. 특히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의 대처가 흥미롭습니다. 급하게 도망가는 와중에도 적의 진영에 자신의 사람을 훌륭하게 심어두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에 관한 내용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아히도벨은 그냥 본인이 생각한 의견을 내는 것일 텐데 하나님의 응답과 같이 여겼다니… 세기의 천재같은 건가요? 이 시대에 아히도벨이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드네요ㅋ

  5. 하늘아래 사람이 어찌 완벽하다 할수있을까요? 그러나 이글을 통해 비쳐지는 다윗의 모습은 가히 완벽하다 할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없어보입니다(물론 다윗도 그의 삶속에서 몇몇가지의 실수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 마지막의 필자의 소견처럼 다윗이 이렇듯 많은것을 겸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경외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그들 모두가 다윗처럼 만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알지만 못하거나 또는 안하거나, 단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 전부가 아닌,고작 마음 한편 구석을 비워두는 믿음으로는 다윗이 경험했던 기적은 볼 수 없음이 자명한 일입니다. 오늘 이글을 읽고 나는 하나님 본위의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 다윗의 마음을 보고 다윗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글이 세부적으로 잘 정리가 돼서 읽는 내내 참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들이 들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언급하신 그리스도와 관련된 다른 글도 흥미로웠습니다.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6.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왕을 미워하지도 죽이려하지도 않았던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울왕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였기에 대우를 다했던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의 마음이 느껴져 제 자신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고 나아갔던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

  7. 와~ 다윗왕이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다윗왕에 대해서 단순히 하나님 말씀 잘 따르고,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다윗왕이라는 인물을 자세히 설명해 놓은 글을 보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미흡한 사람인가 부끄러워집니다.
    다윗왕은 왕이 되기 전 양치기라는 낮은 위치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양들을 이리나 사자의 위험에서 구하여 낼 때에도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을 보였고, 그러한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에게도 서슴치 않고 나아갔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위치까지 올려주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교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낮을 때에나, 높을 때에나 항상 하나님만을 높이고, 굳센 믿음으로 의지하고 따랐던 다윗왕의 인간성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할 성품입니다.
    나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위치에 상관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우리에게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다윗왕 처럼 지혜와 총명도 듬뿍요~^^

  8.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움 속에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을 시기 질투하는 사울 왕… 이 시대에서도 권위와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사울 왕과 같은 안목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과 합한 자가 되도록 날마다 변화하며 누룩을 버리고 다윗의 인간성을 닮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9. 많은 능력을 받고 축복을 받았음에도 사울왕처럼 교만해지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참 아름다워보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 저렇게 섬겨야하는데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겸손함과 섬김보다는 섬김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겸손함으로 더 많은 복을 받고 더 높아졌던 다윗왕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 나보다 남을 더 낮게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항상 저희를 사랑해주신것처럼 많은 사랑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10. 한때 ‘인간성이 좋다’는 말을 듣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간성이 좋다’는 칭찬을 들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라는 식의 반응이 나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픈 대목이죠. 인간성은 ‘인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능력중심의 사회로 변하다 보니, 인성보다는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우선시하게 되었다는 분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네요. 그러나 인성이 무너진 사회는 결국 인성의 부재에서 오는 사회의 악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다시금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교육계의 자성의 목소리가 관심을 끌게 되었고, 전체적인 사회기반을 능력중심보다는 인성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성이 최고’라는 칭찬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 사람은 믿을만 하다’는 뜻을 담고 있죠.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주셨다는 건 다윗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을 고려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사랑, 희생, 배려, 연민, 자비, 도량 등 넓은 의미로 두루두루 훌륭한 성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윗이 그아말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해드릴 만큼 믿음직하고 충직한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는 거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을만한 자라는 칭찬을 듣기란 짧은 시간에 걸친 평가라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관찰하고 나서 내린 평가이셨을 겁니다. 그 칭호가 내포하는 값어치는 금액으로 따질 수가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인성이 부족한 자를 지도자로 세우면,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의 경우죠.
    “능력은 보통이지만 인성이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면, 능력있는 부하직원의 도움을 받아 발전을 이룬다” 회사 경영진들 중에 다수가 포함되겠죠.
    “능력이 뛰어나고 인성도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면,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룬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어요. 다윗 또한 이 경우에 해당되고요. 다윗을 훌륭한 선지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안목에 또한번 놀라게 됩니다!

  11. 다윗처럼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음생활하고싶네여~닮고싶습니다

  12. 이 세상에 최고의 인상은 역시 하나님의 신상을 많이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 이겠지요 거칠었던 상품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 받았듯이 이 시대 신성을 가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성을 넘어 하나님의 신성의 모습으로 변화 받을 수 있도록 자녀들을 교훈 하시고 지도해 주시는 엘로힘 하나님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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