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말로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다 – 다윗과 아비가일

Antonio Molinari David y Abigail | 다윗과 아비가일
다윗과 아비가일 | Antonio Molinari 작품

잠 14: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아비가일 등장의 배경

다윗이 왕이 되기 전, 600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마온 지방에 거주할 무렵의 일이었다. 그곳에는 성격이 정 반대인 한 부부가 살고 있었으니, 그들에 관한 다음의 성경 기록을 보자.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며 그는 갈멜 족속이었더라” (삼상 25:3)

아름답고 지혜로웠던 아비가일과 대조적으로 남편인 나발은 악하고 어리석은 자였다. 학자들에따라서는 나발의 이름에 대하여 이 이름은 진짜 이름이 아니고 나중에 생긴 별명일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인 ‘나발’은 ‘무분별한, 미련한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에 ‘나바보’라는 이름이 흔치 않다.)

또한 이들은 매우 부자였다. 이에 관련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자면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 (삼상 25:2)

심히 부자였다는 성경의 표현이 있긴 하지만 이들이 어느 정도 부자인지 가늠하기는 어려우므로 동방 최대 부자였다는 욥과 비교해 보자. 욥은 양이 7000, 약대가 3000, 소가 500, 암나귀가 500이나 되는 큰 부자였다. 그러므로 양이 3000, 염소가 1000마리인 나발 또한 무척 부유한 편임을 알 수 있다.

 

다윗과 나발

이처럼 부자였던 나발에게는 예쁘고 현명한 아내 아비가일 뿐 아니라 한 가지 복이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근처에 주둔하게 된 다윗의 군대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양이나 짐승들은 큰 자산가치가 있었으므로 부유한 목축업자들은 이웃 부족들이나 산적들에게 습격 당해 양 떼를 빼앗기는 일이 흔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가 있는 곳에 누가 오겠는가? 도적떼들에게 나발의 양 무리란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게다가 이 즈음 다윗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선지자 갓,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심지어 사울 왕에게까지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처럼 명성 높은 다윗의, 그것도 군대가 근처에 자리잡은 덕분에, 나발은 아무런 방해나 습격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다윗의 군대 또한 나발의 목자들을 선대하였다. 이럴 경우, 당시로서는 나발이 먼저 다윗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며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발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그의 이름이 달리 ‘나발’이겠는가?)

한편 다윗은 싸울 수 있는 남자만 600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이끌고 있었으므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기뻐하며 소년들을 보낸다. 왜냐하면 양털을 깎는다는 것은 농사로 치면 추수의 때와도 같아서 큰 축제 기간이 되어 잔치를 베풀고 포도주가 나오는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좋은 시기에 소년들을 보내면 약간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는 나발이었다. 더군다나 나발은 하지 않아도 될 무례한 말을 덧붙임으로써 다윗의 화를 부추긴다.

 

어리석은 나발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삼상 25:9 ~11)

나발은 다윗과 그 무리 전체를 주인을 배반하고 떠난 종들의 불법적이고 하찮은 집단으로 전락시키며 그런 정체불명의 알지도 못하는 자들한테까지 내가 왜 내 종들을 위한 음식을 주어야 하는가? 라고 조롱한다. 이 말에 분노한 다윗의 사환들이 떠나고 심상치 않은 기색을 감지한 하인들은 서둘러 나발 대신 지혜로운 안주인 아비가일을 찾는다. 아비가일을 찾은 하인의 말을 들어보자.

“소년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사자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을 알아 생각하실찌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삼상 25:14~17)

 

나발에 대한 다윗의 분노

이 말처럼 나발의 종들을 위해 수고하였으나 그 대가로 감사의 인사는 커녕, 자신의 부하 앞에서 다윗을 조롱한 나발에게 다윗은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발의 집안 전체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군사 400을 직접 이끌고 나서고 있었으니 하인의 설명대로 나발은 집안 전체가 멸족될 크나큰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어리석은 남편, 나발이 모든 사고(?)를 치고 난 후에야 다윗에게 모두가 죽을 것 같다는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자고로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과 처신이 빛을 발한다. 생각해보라!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무장을 하고 달려올 만큼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되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러나 아비가일은 매우 온화하고 지혜로운 말로 다윗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현명했던 아비가일

Escalante-abigail | 다윗과 아비가일
신중한 아비가일 – Juan Antonio 작 | 다윗과 아비가일

아비가일의 순발력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와 무화과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니라” (삼상 25:19~20)

아비가일은 일단 선물을 준비하여 자신보다 먼저 다윗에게 선물을 올려 보낸 후, 자신도 뒤따라 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중에서(당연히 그렇겠지만) 이 사태를 이끌어낸 장본인, 남편 나발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급히 나선 아비가일은 드디어 다윗과 마주치게 된다. 분노한 다윗에게 아비가일은 어떻게 말했을까?

 

지혜로운 아비가일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 아래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삼상 25:23 ~24)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마자 얼굴을 땅에 대고 몸을 굽혀 극진한 예를 취하며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니 자신의 말을 한 번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삼상 25:25)

자신의 남편 나발은 이름처럼 미련한 자니 그를 개의치 말라, 자신은 다윗이 보낸 소년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다윗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자로서 반드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다윗을 불량한 무리 정도로 취급하던 남편 나발과는 정반대의 견해였다.

 

자신 가족을 위해서 다윗의 입장에서 설득한 아비가일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이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로서 나발과 같은 자를 위해 불미스러운 역사를 남길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처럼 미련한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치실 것이므로 다윗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내어 다윗이 손에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셨다고 설득한다. 즉, 아비가일은 단순히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는 입장으로 다윗을 설득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비가일의 이 말이 다윗에게 감동이 된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로써의 다윗의 입장과 명예를 헤아리는 한편,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꿰뚫어보는 지혜와 분별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아비가일의 말에 감동을 받은 다윗은 그 마음을 돌이키고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며 그녀에게 복을 빌어 준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다윗은 아비가일을 평안히 돌려보낸다.이로써 아비가일은 자칫 집안 전체가 멸족될 수 있는 크나큰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된다. 한숨 돌린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갔을 때에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버린 자와 지혜로써 왕의 아내가 된 자

어리석은 자의 최후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그 집에 배설하고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삼상 25:36)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위태로운 순간에, 나발은 홀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마치 왕의 잔치와도 같은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환락에 취해 있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아비가일은 침착하게 일단 남편 나발이 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삼상 25:37~38)

아침이 되어 나발이 정신을 차리자 아비가일은 집안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했었는지, 그간 있었던 일을 나발에게 알려 주었다. 나발은 아마 아비가일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일을 벌였는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가 크게 낙담한 나머지 돌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리고 얼마 후,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과 같이 하나님이 나발을 징계하므로 나발이 죽고 말았다.

지혜로운 자로서 왕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

이처럼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자신 대신 악인을 치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한편,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비가일에게 청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다윗의 사환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일러 가로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삼상 25:40)

이리하여 아비가일은 이스르엘 사람 아히노암과 함께 다윗의 아내가 된다.

 

다른 글 보기 : 

참고 :

  1. 위키피디아
  2.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 아비가일 
  3. 뉴스파워

11 thoughts on “지혜로운 여인을 사랑한 다윗 | 다윗과 아비가일(다윗의 연애)

  1.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는 정말 큰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지혜가 있고없고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가 없다 한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시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 영혼을 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절체절명의 순간 마치 영화속에 한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위기를 극복한 아비가일이 너무 멋있게 보이네요…
    세상을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생기지만 그때마다 상대를 배려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를 멸시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로 반드시 그 끝은 멸망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사울왕은 핍박하다가 전장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처럼 나발 역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다윗을 업수이 여기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선히 대하는 자는 축복으로서 보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하여 마지막 성령시대 구원자 성령과 신부되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택해주심에 감사 드리고 세세 영광 돌려야 겠습니다.

  4.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반드시 그렇다고 볼순 없지만 꽤 설득력 있게 들릴 때가 있는데 다윗의 얘기를 듣고보니 어리석고 무분별한 바보같은 행동으로 목숨을 잃은 ‘나발’과 지혜롭고 현명한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한 ‘아비가일’의 경우가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예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부모님이 자식의 이름을 지어줄때 고심끝에 이름을 짓거나, 돈을 지불하고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짓기도 하잖아요? 그게 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앞날에 축복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 아닐까요?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돌아가는 것 만큼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구원의 근본 되시는 ‘엘로힘하나님 자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을 통해 좋은 깨달음을 하나 얻었네요.

  5. 역시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더니 말이 정말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다윗과 아비가일의 얘기는 처음 보는데 흥미롭네요!

  6.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군요. 저런 내용이 성경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재미있네요.ㅎ
    왕에게는 지혜로운 왕비가 딱이죠

  7. 아비가일이 그처럼지혜로운여인이었네요~~~ 지금까지 생각해보지못했던 흥미로운내용입니다
    아비가일과같은지혜로 하나님을영화롭게 할수있는 자녀가 되고 싶어집니다^^

  8. 아비가일이 어리석은 남편을 대신해서 다윗의 화를 누그러뜨린 것만 기억했는데 포스팅을 보고 아비가일이 얼마나 지혜롭게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네요. 우리나라 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비가일을 지혜로운 말로 목숨을 구한 것이네요. 말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9. 성경의 한 역사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네요!!
    정말 아비가일처럼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을수도 있고 자신을 망하게 할수도 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성경말씀 가운데서도 지혜로운 자의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와도 같다는 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말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항상 지혜로운 말을 하여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고싶네요^^

  10. 지혜로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자기자신도 축복을많이받은 여인이네요^^ 아비가일과같이 이시대 지혜의 근원이신 하늘어머니가르침대로 실천하여많은 영혼들에게 유익을 주고 스스로도 축복을 많이 받는 하나님자녀가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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